사형제가 아버지를 업고 굴로 피난 가는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사진=박명희
달성군 유가읍 입구에 위치한 사효자 굴 안내판. 사진=박명희
  1. 굴 입구
    사형제가 부친과 함께 피난 했던 굴 입구. 사진=박명희

    12장려가 봉안된 현풍곽씨 문중 산. 사진=박명희

대구 달성군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사효자굴(四孝子窟, 유가읍 양리 산144)이 있다.

과거 현풍현 곽재훈은 선비로 슬하에 4형제 결, 청, 형, 호를 두었다. 곽재훈은 임진왜란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사촌형이다.

임진왜란 당시 현풍고을도 왜적들이 양민을 무작정 탄압하며, 수탈 자행과 강제동원으로 피난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아들 4형제는 병든 부친을 모시고 비슬산 중턱에 있는 굴 속에 숨어 피난생활을 했다. 그런데 부친의 천식이 심해 그칠 줄 모르며 터져 나오는 바람에 굴 밖을 지나던 왜장에게 발견됐다.

왜적이 칼로 부친을 해치려 할 때 형제는 죽음을 무릎쓰고 서로 아비를 호위하다가 하나 둘 차례로 죽임을 당했다.

왜장이었지만, 죽음으로 부친을 보호하는 참으로 가슴을 치게 하는 지극한  효심에 감동했다. 왜장은 눈앞에서 벌어진 효행에 감동해 부친을 살려 석방하면서 등에 ‘사효자지부(四孝 之父)’라는 글을 남겼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왜장은 “이 노인의 아들들을 전부 죽였으니 앞으로 어떠한 장수라도 이 사람은 절대 손대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노인은 죽지 않고 아들 넷을 잃게 됐다.

네 효자의 아버지 곽재훈은 아들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에 사무쳐 얼마 뒤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같은 날 죽임을 당한 네 명의 효자에 대해 알게 된 선조는 네 아들에게 정려를 내려 지극한 효심을 기렸다. 이들이 피신했던 바위굴은 지금까지도 ‘사효굴(四孝窟)’이라 새겨 전해지고 있다.

효자사공(孝子四公) 정려는 현풍곽씨 12정려각에 이들 형제의 사연이 기록돼 솔례마을 입구에 있는 12 정려에 봉안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