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유별님 기자] 지금은 MZ세대들도 5명 중 1명은 n잡러입니다. 이명조 씨는 2017년 퇴직하고 지금까지 15개의 일자리를 경험했습니다. n잡러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배웁니다. 자격증도 따두지요. 작은 일자리라도 경력을 위해 부지런히 참여합니다. 전직은 화려했어도 퇴직 후 현실은 매정했습니다. 시니어에게 경력을 살려 일할 만한 자리는 많지 않습니다. 이명조 씨는 마음을 바꿨지요. 앞으로 진행되는 사회 트랜드를 읽기로 했습니다. IT시대, 스마트 폰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수많은 고령자들을 위한 디지털교육도 시대를 읽은 기회포착이지요. 커피나 여행을 좋아하는 본인의 취미를 즐기며 일자리로 연결하기도 합니다. n잡러 이명조 씨는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디자인해 나가기로 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줍니다. 그 희망찬 얘기를 들어봅니다.
Q. ‘n잡러 디자이너’란 무슨 뜻인가요?
n은 두 개 이상의 자연수예요. 잡은 job, 러는 사람을 의미하는 er, 그래서 ‘n잡러(n+job+er)’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갖는 것이지요.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계획하고 목표에 따라 자유롭게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에요. n잡러 디자이너는 이런 일자리들을 기획하고 연구, 개발하는 일이에요.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상담하고 디자인해주고 있어요.
보통 연초나 중반에 앞으로의 트랜드를 읽어요. ㅅ사회전반적인 경향이나 유행 등을 살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회 닿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배워두지요. 아예 자격증까지 땁니다. 준비한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는 겁니다. 가진 자격증을 쓸 수 있는 영역도 뒤져봅니다. 여가 생활을 디자인하듯 일자리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거지요. 이것이 ‘n모작 디자인’입니다.
Q. 현재 하고 계시는 n모작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은 서울디지털재단의 ‘어디서나지원단’으로 ‘디지털 튜터’를 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니 ‘커피향 속의 정동길’해설도 합니다. 창신동 문화해설도 하고 있어요. 세계문화여행카페도 운영하고, 상하이 여행 강의, 중국문화 이야기 강의 등 많아요. 유튜버도 합니다. 올해 새로 도전한 일자리는 ‘지식나눔콘서트’ 요청으로 길거리 강연을 하고 있어요.
지금의 일자리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겁니다. 내 취미, 지식,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하며 노는 것이지요. 약간의 용돈을 버는 것은 덤입니다.
Q. n잡러가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LG전자 상하이 주재원으로 3년 근무하고, 중국회사에서 12년간 마케팅을 했습니다. 2017년 1월 퇴직하고 한국에 왔지요. 돌아오니 퇴직 전 주된 직무를 살려 일할 만한 곳이 없었어요. 이력서를 써가며 도전했지만, 어려웠어요. 아직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막막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어를 활용한 일을 했어요. 사회공헌일자리였는데,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오는 중국인들을 위해 교육생 안내와 통역업무를 했지요. 아주 잠깐 일하고는 중국어에 관한 일은 안 했습니다. 15년이나 살고 왔으니 지겨운 측면이 있었어요.
2018년에 50+서부캠퍼스에서 ‘도시여행해설사’ 강의를 들었어요. ‘아, 이거다!’ 했지요. 내 것을 만든 거예요. 골목길에 역사와 문화를 결합한 해설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 창신동에서 시작했어요. 화가 박수근 작업터가 있고, 백남준 집터가 있잖아요. 유명한 봉제거리도 있고,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도 있거든요. 이 얘기들을 죽 엮는 거지요. 인기 있었어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나중에는 ‘나목연구회’가 해설 요청을 해온 겁니다. 박수근 화백의 유명한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란 그림이 있잖습니까? 박수근 집터가 있는 창신동을 얘기로 엮었지요. 한 가지 일이 가지를 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 한 일을 다른 일로 연결하면 n모작이 되는 거예요.
‘세계문화여행 카페’를 열고 세계여행에 대한 강의와 상담을 시작했어요. 뉴질랜드에서, 혹은 파리에서, 일본, 유럽, 동남아 등에서 살다 온 사람들 5명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주 경험이 있으니 생생한 정보를 줄 수 있지요.
상하이에서 2년간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니 로스팅도 직접 했지요. 제 브랜드로 ‘모닝’이란 커피도 만들었어요. 그러자 2020년에는 노원50+에서 지역인턴모집에 로스팅으로 뽑힌 겁니다. 30대 청년기업에 가서 제가 로스팅을 해준 거예요. 영화 ‘인턴’처럼, 젊은 사장님 밑에서 시니어인 제가 일을 한 것이지요.
그 후 코로나19 시대가 왔지 뭡니까. 그나마 없는 일자리가 다 막히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아, 기가 막힌 일이 있었어요. 코로나 시대에는 또 그에 맞는 일자리가 생기더라구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가 하는 ‘시니어 생활방역사 전문교육’이란 거예요. 우리가 1기로 4회차 교육을 받았어요. KBS 1TV에서 취재하고 종일 방송에 나왔지 뭡니까. 그걸로 또 서울도서관 생활방역사를 했어요. 도서관 경험이 있으니 다른 도서관에서 일자리 요청이 온 겁니다. 재미있었어요.
Q. n모작 디지인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반부 30년은 군대 이후 직장생활까지로 봅니다. 이후 은퇴해서 90까지 산다면, 60부터 30년을 더 살아야 해요. 그 3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일자리도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취미를 살려 즐기며 돈도 버는 거지요. 그러자니 여러 가지 일자리를 하게 됐습니다.
당장의 사회 트랜드를 잘 살펴보는 겁니다. 앞으로 1~2년은 어떤 일자리가 좋겠다 파악하는 거지요.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 어떤 경력을 쌓아야 하는지 등을 연구하고 기획하고 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n모작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를 했어요. n모작 강의도 했지요. 그러다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n모작 디자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한 개의 일자리가 가지를 뻗어 유사 일자리로 연결되는 점은 참 신나지요. 그렇게 n잡러가 되는 거예요.
n모작 디자인을 하며 지금 기대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거예요. 일반 무역회사에서 수출을 담당했던 사람이 있어요. 은퇴 후 코트라에서 수출전문위원으로 10년간 근무했지요. 수출 안 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장려 컨설팅 업무를 하고, 상공부장관상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회사를 나와서는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지금 70세인데, 날마다 놀기도 피곤하고 우울증이 왔답니다. ‘n모작 디자이너 이명조’ 소식을 듣고 찾아왔지 뭡니까. 며칠 후에 자세한 상담 날짜를 잡고 꼭 오기로 약속했어요. 지금 지켜보고 있어요. 약속을 잘 지킬 것인지.
찾아보면 할 일은 많아요. 전직 내세우지 말고 체면 따지지 말고, 그냥 놀며 일하면 돼요. 일주일에 두세 번 나가는 곳으로. 사람들도 만나고 자기 노하우도 들려주고 밥도 같이 먹고, 우울증이 올 수 없지요.
Q. 본인의 일자리 n모작 중 가장 보람 있는 사례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디지털 튜터’가 가장 바쁜 일입니다. 아주 기쁜일이에요. 어르신들 스마트폰 기초학습 지도예요. 카톡 활용하기, 길 찾기 앱 활용, 음식배달주문, 인터넷 뱅킹, 인터넷 쇼핑, 동영상 편집, 당근 마켓 이용하기 등 많습니다.
92세 남자 어르신의 사례는 가슴 뿌듯합니다. 아들 며느리에게 물어보면, 처리는 해주는데 매번 퉁퉁 거린답니다. 딸은 “아빠, 이런 것 배워서 뭐 하실 거예요? 그냥 통화나 하셔요”라며 잘 안 해준대요.
그 어르신이 ‘요즘은 이것 안 배우면 안 되겠다’ 느끼셨대요. 그래서 배우러 오셨지요. 지금은 열심히 배워서 아주 잘하십니다. 자긍심이 대단하셔요.
불광복지관에서 만난 77세 남자 어르신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돌아가신 부인 사진과 딸⸳사위 사진을 모아둔 것이 몽땅 날아간 겁니다. 어르신은 우울증이 오고 괴로운 날을 보내셨답니다. 다행히 갤러리 휴지통이 30일 동안 보관하고 있어 다 되돌려놨어요. 어르신은 우울증이 해소됐다며 행복하다 하셨지요.
“행복하신가요? 그러시다니 저도 행복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정말 이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70대 초반 한 여성은 카톡으로 딸하고 영상통화를 하게 됐답니다. 딸이 “우리 엄마가 이렇게 멋지게 변했다”며 “엄마, 우리 앞으로 이렇게 영상통화하며 살아요” 하고 엉엉 울었대요. 아, 행복하지 않습니까?
어르신들은 ‘디지털금융사기 예방’에 대한 설명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이걸 모르면 누구라도 당하기 쉬워요. 문자 오면 열어보고 링크 잘못 누르면 악성코드가 설치되지요. 통장에서 마구 빠져나갑니다. 저만의 자료 파일을 만들어 설명해 드리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찾는 분들이 많아요. 아주 보람 있습니다.
‘스마트폰 용량 늘리기 5단계’ 도 아주 중요합니다. 어르신들은 이런 걸 배우게 될 때 신기해 하고 기뻐하시지요.
1. 스마트폰을 1분간 껐다가 다시 시작하기.
2. 중복 어플 없애기, 어플 정리하기.
3. 사진이나 동영상은 클라우드(네이버=마이박스)로 이전하기.
4. 설정 ‘배터리 및 디바이스’에서 ‘RAM’을 1일 2회 최적화 하기.
5. 매주 1~2회 자주 쓰는 앱의 ‘캐시’ 없애기.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지식나눔콘서트’ 요청으로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6회차 길거리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단초로 3년 후에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길거리 강연을 할 계획입니다. 우리 강사들은 사회공헌활동으로 무보수 자원봉사예요. 통기타 가수도 있고, 소리명창 무형문화재도 있어요. 대금을 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와 우수성을 알리려고 합니다.
제 n모작 중 버킷리스트에 있는 ‘길거리 강의’를 하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앞으로는 순수 사회공헌활동 비영리단체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개인 소유 지식을 시민들에게 나줘주는 것이지요.
‘n잡러 이명조’ 자서전도 만들 계획이에요. 도전하고 희망을 품고,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건강하니 도전은 계속할 겁니다.